Holy Life

25-4.04

본문: 히브리서 11:17-19절

 

제목: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셋째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19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이 사실을 굳게 믿었기에 자기의 독자 이삭마저도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그의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자기의 아들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살리셔서 큰 군대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메말라버린 지팡이, 곧 죽은 나무에서 생명의 싹을 돋아 오르게 하셨던 분이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손을 막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을 막지 않으셨다면 아브라함은 실제로 자기 아들의 목을 내리쳤을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 보실 때에...

그 마음으로 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멈추게 하시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본문에서 17절에 나오는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는 동사의 시제입니다.

시제가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동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미 믿음으로 드렸다...

이것은 이미 마음으로 아들을 죽였다는 뜻입니다.

죽이는 척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마음으로 죽였습니다.

어떤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사업을 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그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어느 주일 그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설교 제목이 "겨자씨만한 믿음"이었습니다.

본문은 마17:20의 말씀이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그날따라 목사님은 겨자씨를 직접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 성도들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겨자씨는 눈에 겨우 보일듯 말듯한 너무나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날의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목사님에게 부탁을 해서 겨자씨 한 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는 겨자씨를 자기 명함 뒷면에 스카치 테이프로 단단히 붙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는 힘들고 낙심이 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겨자씨를 꺼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겨자씨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셨지?

그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자 믿어.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당하고 있는 환난을 하나님께서 풀어주시겠지.“

그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낙심하지 않고 그 겨자씨를 보면서 자기의 믿음을 굳게 지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새로운 용기를 얻고 다시금 일어설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은 크게 성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극심한 시련을 극복하시고 다시금 사업에 크게 성공하셨습니까?"

그럴 때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자기 주머니 속에서 겨자씨를 꺼내서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낙심하지 않고 겨자씨를 보면서 제 믿음을 굳게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 믿음에 아름다운 보상을 주셨습니다.

저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눈앞에 절망의 산이 높이 놓여 있습니까?

그 산의 높이를 재면서, 그 크기를 바라보면서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절망의 산 가운데 커다란 희망의 터널을 뚫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여러분의 눈앞에 있는 절망의 산을 믿음의 깊은 바다 속에 던져버릴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가는 길에 시온의 대로를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셨던 귀한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부디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여러분 삶 속에 놓여 있는 모든 걱정과 근심과 모든 절망의 산을 저 은혜의 바다 위에 던져 버릴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찾아 온 모든 근심과 걱정과 환난과 고난들을 오직 믿음으로 은혜의 바다에 던져 버리고 마음껏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 위에서 풍성한 기쁨과 위로와 평강을 누릴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03

본문: 히브리서 11:17-19절

 

제목: 드리는 기쁨!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둘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받기를 바라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독자라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성숙한 신앙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100세라는 나이에 이삭을 얻었습니다.

물론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대단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그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주여, 구하는 대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것도 물론 소중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소중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주여, 말씀만 하시옵소서. 아브라함이 그의 독생자 이삭을 드린 것처럼...

그 옛날 베다니의 마리아가 자기의 소중한 옥합을 주를 위해서 아낌없이 깨뜨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나의 가장 소중한 모든 것이라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이 더욱 소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도 더 복이 있도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기의 독생자 이삭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준비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서 수양 한 마리를 미리 예비하고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직도 받기만을 바라는 초보적인 신앙단계에 머물러 있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으로 더욱더 성숙해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정성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빚을 내어서 병원을 지었습니다.

개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환자들이 많이 찾아와 주지 않았습니다.

빚이 자꾸 늘어납니다.

그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셔야 되겠습니다. 빚이 자꾸만 늘어납니다. 많은 환자들을 이곳으로 보내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마음속에 아무래도 자기의 기도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대 장의사가 무턱대고 장사가 잘 되게 해 달라고만 기도하는 것은 무슨 뜻이 됩니까?

사람들이 많이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나 별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사가 무턱대고 환자를 많이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무슨 뜻이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병들던지 그렇지 않으면 사고를 많이 당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동안 잘못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바른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기도하면 되겠습니까?"

성령께서 그의 마음속에 이러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에게 찾아오는 환자들을 사랑하도록 하여라. 너는 그들에게서 돈을 빼앗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에게 기쁨과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주도록 노력하여라. 그리고 너의 병원을 통해서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나타내도록 하여라."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다음부터는 돈은 일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는 환자들이 찾아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 사람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고 이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 환자를 따뜻하게 잘 보살펴줄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건강을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자연히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얼마가지 않아서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많은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선교사업에 크게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아직도 계속해서 무엇인가 받기만을 원하십니까?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자기의 독생자 이삭마저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뒤로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마다 어떠한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마다,

자기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마음으로 드렸을 것입니다.

이삭도 함께 제단 위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지금 자기 자신이 바쳐지고 있다는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 우리에게 있는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심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 예물, 봉사와 헌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무엇인가 받기만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온전한 드림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아브라함처럼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부디 여러분 모두에게...

이 여호와 이레의 축복과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오직 하니님께 대한 사랑을 품고 그 사랑으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섬길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해 오직 기쁨과 감사로만 드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02

본문: 히브리서 11:17-19절

 

제목: 하나님 제일주의!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떠했기에 독자 이삭을 드릴 수 있었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 특징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 최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최고였습니다.

17절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여러분!

오늘 본문의 배경은 창22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까?

그를 넘어뜨리기 위함이었습니까?

그의 발걸음을 실족시키기 위함이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귀한 믿음을 밖으로 끄집어 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그를 위해서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시험을 통과하고 난 뒤에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생자 이삭을 번제를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그 약속의 내용이 18절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은 분명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이삭을 통해서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창대하게 되리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삭은 장가도 들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 이삭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스스로 깨뜨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이삭은 아브라함의 독생자였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는 하갈의 몸에서 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은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욕심의 결과로 태어난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이삭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들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이삭은 아브라함의 독생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독생자를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그는 아들 이삭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합니다.

칼로 목을 내리쳐야 합니다.

팔 다리를 자르고 각을 떠야 합니다.

불태워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그처럼 끔찍하게 죽일 수 있습니까?

사람으로서는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아브라함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느냐?

결국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까?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드렸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아브라함에게는 이삭보다도 하나님이 더 소중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주신 하나님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아브라함은 하나님 제일주의의 믿음을 품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믿음을 품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제일주의 믿음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이삭과 같은 자녀가 있습니까?

그러나 그 이삭 때문에 우리에게 이삭을 주신 하나님을 망각해 버리는 어리석인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건강 때문에 세상일에 분주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게으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직장 때문에 오히려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등한시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 헌금 드리는 일에 오히려 인색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다시 결단하고 다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세상 것들...

하나님 주신 것입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의 환경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서 밀려나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모든 것이 하나님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요구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하신다면...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 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이러한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으로 하나님 나라와 천국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며 순종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녀와 물질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 보다 더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경외하며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며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하나님 품으로 돌이킬 수 있는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4.01

본문: 히브리서 11:17-19절

 

제목: 아들을 드리는 믿음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후 2세기 초에 이그나티우스라는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돈독한 분이었습니다.

인품도 훌륭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때 로마 황제의 핍박이 심하게 몰려왔습니다.

그는 맨 앞장에서 성도들의 신앙을 독려했습니다.

그러다가 핍박자들의 손에 붙잡혔습니다.

결국은 본보기로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원형 경기장에서 사나운 들짐승들의 먹이로 던져지기 위해 로마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자기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기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이제야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그의 죽음을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그나티우스를 위한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끌려가던 중에 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 편지를 받는 대로 저를 위한 구명 운동을 중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게 있는 최선의 것을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속에 있는 이 뜨거운 순교의 열정을 부디 꺽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제가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저를 독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그는 자기가 바라던 대로 자기에게 있는 최선의 것...

곧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는 믿음을 따라 살다가 믿음을 따라 순교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최선의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자신에게 최선의 존재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서도 우리의 모든 것...

우리에게 있는 최선의 것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막12장에 기록된 과부의 헌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성전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연보궤에 돈을 넣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여러 부자들이 많은 돈을 연보궤에 넣었습니다.

잠시 뒤에 한 가난한 과부가 연보궤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더니 달랑 엽전 두 닢을 넣었습니다.

지극히 적은 돈입니다.

그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연보궤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 가난한 과부가 제일 많은 것을 넣었도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금액적으로 보면 분명 먼저 헌금을 바쳤던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막12: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판단하시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넣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직도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도 우리에게 있는 최선의 것,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 읽고 있는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자기의 독생자 이삭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미래였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자기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아니 아브라함 인생에 있어서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의 독생자 이삭을 과감하게 결단하고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아들 이삭을 드려도 갚을 수 없는 놀라운 사랑임을 깨달았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을 믿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아브라함과 같이 여러분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드릴 수 있으십니까?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드릴 수 있으십니까?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뼈를 깍는 각오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쉽게 하나님께 우리의 귀한 것을 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전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보다는...

이 세상 것에 대한 미련과 정욕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이 세상을 더욱 사랑하고...

여전히 하나님 보다는 내 자식을 더 사랑하고...

여전히 하나님 보다는 물질과 이 세상 주시는 쾌락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 함께...

진정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으로...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조용히 마음으로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수준과 믿음의 분량에 합당한 것으로...

(시험 들지 않는 수준에서!!! 자신의 믿음의 수준 이상으로 드릴 때에는 반드시 그것으로 인하여 시험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드릴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 나라와 천국 복음을 위하여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믿음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작은 믿음의 실천을 통해 풍성한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우리의 심령과 삶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31

본문: 히브리서 11:13-16절

 

제목: 믿음으로 얻는 축복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으로 믿음의 사람들은...

셋째로,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16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여러분!

믿음을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나그네로서 살아야 합니다.

둘째,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믿음을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도 역시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산다고 해서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지켜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출3:6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은 스스로를 가리켜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한 성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이미 그 성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 25:34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곳은 이미 창세 전부터 예비된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 이 성은 히 11:10에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이 경영하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경영하시고 하나님의 손으로 친히 지으신 성입니다.

얼마나 영화로운 성이겠습니까?

어떤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일찌기 홀로 되셨습니다.

권사님은 콩나물 장사를 하시면서 자녀들을 훌륭하게 잘 키웠습니다.

자녀들도 잘 자라서 이제 나름대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권사님은 예전의 오두막집에서 홀로 구차한 삶을 계속해서 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자녀들이 권사님을 찾아와서 애원을 했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지 않습니까? 그러니 혼자서 이렇게 구차하게 살지 말고 우리와 함께 좋은 집에서 사십시다."

권사님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너희들이 그토록 애원하니 나도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구나. 너희들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날 위해서 이런 집을 한 채 지어다오. 바닥은 온통 유리로 깔아라. 집의 기둥은 열두 개를 세워라. 그리고 기둥에는 각기 다른 보석을 박도록 하여라. 문도 열 두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각 문은 진주로 장식을 하도록 해라."

거기까지 말했을 때, 자녀들이 픽 웃었습니다.

"어머니, 농담이시지요? 세상에 그런 집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그 권사님의 말씀은 걸작이었습니다.

"왜 그런 집이 없니? 나는 이미 하늘나라에 그런 집을 분양받아 놓았다. 나는 곧 그곳에 가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더러 그보다 못한 집으로 이사 가서 살라고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러분!

새 예루살렘성은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찬란한 성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경영하시고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곳에 올라가서 세세무궁토록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직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나그네로서 하늘의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혼자 두지 아니하십니다.

나의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새 예루살렘 성,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시고...

하늘의 놀라운 축복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오직 믿음으로 하늘의 축복을 맛 볼 그 날을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며 이 광야와 같은 나그네 길을 성령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본향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하늘의 집을 지어가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믿음으로 하늘의 집을 짓고 오늘도 믿음으로 하늘의 집을 소망하며 오직 천국 복음을 증거하며 저 천국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28

본문: 히브리서 11:13-16절

 

제목: 본향을 찾는 자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믿음의 사람들은

둘째로, 더 나은 본향을 생각하고 본향을 찾아야 합니다.

14절-16절 말씀입니다.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오늘 본문에는 두 종류의 본향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나온 바 본향입니다. 땅에 있는 본향입니다.

이것은 과거적인 본향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태어난 곳입니다.

둘째, 더 나은 본향입니다. 하늘에 있는 본향입니다.

미래적인 본향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가서 영원토록 살 곳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과거 지향적입니다. 땅엣 것에만 집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를 걸어갈 때를 한번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몸은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온전히 출애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온 바 애굽 땅을 그리워했습니다.

애굽에서 먹었던 고깃 국물을 그리워했습니다.

애굽에서 누워 자던 푹신한 잠자리를 그리워했습니다.

결국 그것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만 일삼았습니다.

롯의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히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멸하실 때...

자기의 나온 바 자신의 집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소금기둥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릅니다.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의 나온 바 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를 생각했더라면 얼마든지 그곳으로 갈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대아 우르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곳에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 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나안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잠시 애굽 땅에 내려가서 피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고 난 뒤에는 과거의 육신적인 자랑거리들을 모두 더럽고 냄새나는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두 번 다시 그것들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앞에 있는 푯대만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천국을 향하여 달음질 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떤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일생토록 교직에 몸을 담았다가 은퇴를 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라고는 살고 있는 50평짜리 아파트 한 채와 퇴직금을 넣어 둔 은행 통장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는 큰 아들이 장가갈 때 50평짜리에서 35평짜리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그 차액으로 아들 부부에게 자그마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딸을 시집 보내면서 다시금 20평짜리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그는 가족들을 다 불러놓고 이렇게 유언을 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집과 내가 가지고 있는 은행 통장을 상속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라. 내가 죽는 그날, 이 집은 하나님께 가지고 갈 것이다. 그리고 통장에 있는 돈도 내가 천국에 갈 때 노잣돈으로 다 써야겠다. 그러니 욕심내지 말아라."

그리고서 그 장로님은 자기의 전 재산을 교회가 건축할 때 하나님께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물론 자녀들도 장로님의 뜻에 기꺼이 따랐습니다.

장로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보물을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보물이야말로 진정 하늘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면 안 됩니다.

고달픈 이 땅의 삶을 후회하거나 원망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하루 하루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면서 그 하늘의 본향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날마다 하루 하루 하늘의 새 소망과 평강과 기쁨으로 넘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믿음으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며 여러분의 본향을 향해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본향인 천국을 바라보며 오직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이 땅의 것을 좇는 삶이 아니라 천국의 상급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이 땅의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청지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27

본문: 히브리서 11:13-16절

 

제목: 나그네 인생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구체적으로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믿음의 선배들이 품었던 믿음의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믿음의 사람들은 나그네 의식을 품어야 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여러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자신들이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의식으로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히11:1에서 믿음을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오늘 본문에서는 히브리서 기자가 이 믿음을 어떻게 설명을 했습니까?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똑같은 맥락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마치 그것이 자기들의 삶 속에 이루어진 것처럼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비유적으로 설명해봅니다.

명절이 되면 우리는 고향을 찾아갑니다.

몸은 아직도 고향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친지들을 만나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것으로 이미 마음은 설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약속만 하셨습니다.

That was enough!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생전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마치 이미 자신들의 삶 속에 이미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정착해서 살지 못하고 장막을 치며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기꺼이 고백하면서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 창23:4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내 사라를 위한 매장지를 사기 위해서 헷 족속에게 한 말입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또 창47:9입니다.

야곱이 애굽 왕 바로에게 한 말씀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이와 같이 그들은 자기들이 나그네로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나그네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그네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세상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혀서 귀하게 쓰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옛날 어떤 나라에 왕의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하지만 늘 행복했습니다.

하루는 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늘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발사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예, 저는 늘 제 삶에 대해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왕은 신하들에게 그 이발사에 대해서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발사가 어떻게 자기의 삶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는지 비결을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그때 한 지혜로운 신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아마도 그 이발사는 99의 함정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에게 금화 99냥을 하사해 보십시오. 어쩌면 그도 달라질 것입니다."

왕은 그 신하의 말을 듣고서 그 이발사를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왕은 그를 불러서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금화 99냥을 담은 주머니를 하사했습니다.

이발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기뻐하면서 주머니 속에 든 금화를 책상 위에 쏟았습니다.

그리고는 금화의 수를 세어 보았습니다.

아무리 세고 또 세어도 99냥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한 냥을 더해서 100냥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매사에 욕심이 생기고 인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도 줄였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행복한 마음이 사라지지 시작했습니다.

눈에는 핏발이 서기 시작했습니다.

얼굴도 수척해졌습니다.

어깨도 축 처져서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결국은 그도 99의 덫에 걸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이 땅에서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결코 귀하게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 하나님께 쓰임 받는 보람 있고 귀한 사역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그네이다. 나는 어차피 빈손으로 가야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값있게 다 쓰고 가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귀하게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태어날 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납니다.

무엇인가 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두 손을 다 펴고 죽습니다.

빈손으로 가야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 인생을 비유적으로 이렇게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여관이다. 그 집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집에 잠시 묵고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그리고 우리의 연수는 그 집의 전세 기한과 같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디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나그네로 살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나그네는 머무르지 않습니다.

떠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잠깐 가지고 있다가 버려야 할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믿음을 따라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 믿음을 따라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나그네 인생 길에 동행하여 주시고 오직 주님의 사랑과 능력과 축복의 손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오직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기뻐하고 천국 복음을 증거하는 것으로 감사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26

본문: 히브리서 11:13-16절

 

제목: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이 의미에 대하여 잠시 말씀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일화입니다.

하루는 그가 공원 벤치에 앉아서 깊은 명상에 잠겼습니다.

얼마나 깊이 명상을 하는지 그는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주변에 해가 져서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자리에서 떠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공원을 청소하던 사람이 그를 보고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신사 양반!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기에 아직도 이 자리를 떠날 줄 모르오? 날이 더 어둡기 전에 일어나서 집으로 가야 되지 않겠소?"

그 소리를 듣고서 쇼펜하우어는 정신이 든 듯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군요. 그것이 바로 내 문제입니다. 나도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라서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요 14장을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도마도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덧입고 있는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우리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곧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곳은 믿음으로 가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또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심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음을 따라서 살고 믿음을 따라서 자신의 삶을 마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집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지병이 악화가 되어서 응급실에 실려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한참 뒤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깨어보니까 자기가 수혈을 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지키고 있는 가족들과 때마침 문병을 온 장로님을 가까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숨이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즈음은 피가 부족해서 죽어가는 젊은이들도 많다는데, 나야 곧 죽을 몸이 아니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에게 소중한 피를 집어넣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요? 그만 합시다."

그러더니 스스로 주삿바늘을 뽑아버렸습니다.

목사님은 그곳에 있는 가족들의 손을 한 사람씩 차례대로 잡고서 간절하게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장로님의 손을 붙들고 교회를 위해서 또 교인들을 위해서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서 얼마 안 있어서 목사님은 평안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목사님의 장례식 날 장로님은 그때의 장면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명설교가였습니다. 목사님은 평소에도 강단에서 은혜로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만, 임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에게 너무나도 훌륭하고 영감있는 설교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떠나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아무런 푯대가 없이 방황하는 방랑자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해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 나그네의 삶을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이 세상과 이 땅위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이 세상 것만을 쫓는 삶을 살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살고...

내일 하루도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오직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천국 백성들이 모두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부르시는 그 날이 설령 오늘 온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복된 백성들이 모두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25

본문: 히브리서 11:11-12절

 

제목: 믿음의 열매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마지막으로 사라의 믿음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셋째로, 믿음의 결과(열매)입니다.

12절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여러분!

믿음의 결과는 정말 놀랐습니다.

사라는 나이 늙어 단산했으며, 죽은 자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한 사람으로 자신의 인생이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라는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믿음의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라의 후손은 계속해서 번창해 나갔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늘의 허다한 별처럼, 해변의 무수한 모래처럼 창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결과는 언제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에 아름답고 놀랍도록 보상을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히11:6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잊지 않고 우리의 믿음에 아름답고 큰 상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빌3:14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을 바라보면서 푯대를 향하여 날마다 좇아가는 삶을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새로운 삶을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림을 새롭게 그려 주실 것입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가 되기로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그의 몸을 진단해 보더니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너무나 병약하기 때문에 이 몸으로는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목사가 되었다가는 일년도 목회를 못해서 쓰러져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가 될 생각은 아예 꿈에도 꾸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는 순교할 각오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다 죽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오른손으로 그를 붙드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84세까지 살면서 그 어떤 건강한 사람보다도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많은 구제 사업을 펼쳤습니다.

그의 노년에 그 당시 왕 에드워드 7세가 그를 버킹검 궁으로 초대했습니다.

그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왕은 그에게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남기고 싶은 말을 한 마디 쓰라고 했습니다.

그때 윌리암 부스가 방명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예술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명성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황금입니다. 그러나 나의 야망은 오직 한 가지 사람들의 영혼구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는 영혼구원의 열정을 가지고 평생 복음을 전하면서 불쌍한 이웃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병약한 몸이었지만 건강한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말년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제가 젊었던 시절에 저는 목사가 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때 제 몸을 진단했던 의사가 날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때 의사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신실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 믿음이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만을 꼭 붙들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을 믿으면 실망할 때가 반드시 오지만...

사람을 믿으면 그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날 때가 반드시 찾아 오지만...

돈과 명예를 믿으면 그것이 사라질 때가 반드시 찾아 오지만...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결코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항상 언제나 늘 함께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라의 믿음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사라는 오직 믿음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습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었습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었습니다.

탄식을 즐거움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라의 믿음이 여러분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라가 믿음으로 인생의 변화와 축복을 누렸던 것처럼,

여러분 모두도 믿음으로 여러분 인생의 변화와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저 천국 문을 향해 담대히 걸어가시면서...

하나님 부어주시는 놀라운 사랑과 은혜와 축복의 열매를 풍성히 받아 누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믿음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의 천국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기도하는 심령을 축복하여 주시고 그 믿음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24

본문: 히브리서 11:11-12절

 

제목: 미쁘신 하나님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말씀에 이어서...

오늘은 사라의 두 번째 믿음의 특징에 대하여 은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둘째로, 믿음의 내용입니다.

11절 하반부입니다.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그렇습니다. 사라는 무엇을 믿었습니까?

사라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을 어기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지키십니다.

이 믿음으로 사라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날 밤에 남편 아브라함과 잠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민 23:19에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 가운데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 젊은이가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못 마땅하다는 듯이 이렇게 불평합니다.

"야, 너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하는 거야?"

친구가 능청스럽게 이렇게 받아넘겼습니다.

"뭘 그걸 가지고 그러니? 약속이란 것이 본래 그렇지 않아? 너는 약속이란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약속이란 약간 속이는 거야."

여러분! 과연 그렇습니까?

약속이 약간 속이는 것입니까?

"It could happen to you,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주인공 찰리는 평범한 경찰관이었습니다.

찰리는 사람이 참 좋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 인근에 있는 커피샵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여종업원 이본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보였습니다.

찰리는 그의 기분을 좀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팁이라도 듬뿍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주머니를 살펴보니까 팁을 줄 만큼의 돈도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 자기의 아내를 위해서 산 복권 한 장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그것을 끄집어내었습니다.

그리고는 여종업원 이본느에게 그 복권을 보여 주면서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이 복권에 당첨되면, 당첨금의 절반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다음 번에 내가 올 때에는 오늘 팁까지 합쳐서 두 배의 팁을 주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찰리의 복권이 400만 불짜리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찰리는 자기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절반인 200만 불을 떼었습니다.

그리고 이본느에게 그 돈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Promise is promise, 약속은 약속입니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자기는 그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부족함과 허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한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 신실하신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신실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십니다.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열국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사라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사라로 하여금 열국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신 말씀, 우리에게 주신 약속도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가장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와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모습을 따라...

오늘도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말씀의 언약과 약속대로...

여러분의 이웃과의 약속대로...

온전한 믿음으로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순종하는 귀한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가 순종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사랑과 은혜와 축복의 열매들을 우리의 삶속에 그대로 맺어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늘의 풍성하신 은혜와 평강이 우리의 심령위에 임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21

본문: 히브리서 11:11-12절

 

제목: 믿음으로 힘을 얻었으니...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라의 믿음에 있어서 첫 번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믿음의 능력입니다.

11절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사라는 나이가 늙어 단산했습니다.

이미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나이 늙어 단산했지만, 잉태하는 힘을 얻은 것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라가 그의 남편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잉태하는 힘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사라 자신의 믿음으로 잉태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이요, 믿음의 능력입니다.

사라의 믿음을 살펴볼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사라가 원래부터 믿음이 대단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남편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곧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사라가 어떻게 했습니까? 꾀를 부렸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을 썼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자기의 여종 하갈을 자기의 남편인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지금 아랍 족속의 조상입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얼마나 큰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나서 13년 동안이나 아브라함과 영적인 교제를 단절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창18장에 보면...

어느 날 하나님은 두 천사와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는 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하나님 참 웃기시네. 내가 나이 늙어 단산한지가 언제인데 저런 말씀을 다 하실까?”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사라는 속으로 웃었지만 하나님은 사라가 속으로 웃는 웃음소리를 듣고 계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라의 속마음을 꿰뚫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의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시듯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왜 웃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는 내년 이맘때쯤 아들을 낳을 것이니라."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 말씀에 사라는 번쩍 정신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구나. 내가 왜 지금까지 모든 것을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을까?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능치 못한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사라는 자기의 불신앙을 뉘우쳤습니다.

사라는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 웃음을 취소했습니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아마도 사라는 이러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제가 아멘으로, 할렐루야로 화답을 했어야 하는데 믿음이 없어서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이 여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 순간에 사라의 마음속에 믿음이 들어갔습니다.

그 때부터 사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믿음으로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과 신방을 꾸몄습니다.

99세 된 할아버지와 89세 된 할머니였습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사라의 믿음에 아름다운 보상을 주셨습니다.

사라는 그날 밤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90세라는 믿기지 않는 나이에 사라는 약속의 아들, 믿음의 아들인 이삭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믿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로 지극히 큰 군대를 이루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론의 메말라 빠진 지팡이에서도 새로운 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에 얽매일 필요도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눈앞을 절망의 산이 가로막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희망의 터널을 뚫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여러분 스스로 생각하기에 불가능 일들이 놓여져 있습니까?

믿음으로 그 생각 속에 희망과 소망을 불어 넣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늘의 어두움을 내일의 광명으로 바꾸어놓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오직 믿음으로 모든 고난과 절망과 슬픔들을 희망과 기쁨과 감사함으로 바꾸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 누리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속에 하나님께서 주장하여 주시는 전능하신 능력의 손길을 체험하며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증거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20

본문: 히브리서 11:11-12절

 

제목: 맡기는 믿음!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라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먼저, 우리는 사라 자신이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으로 나아갔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집에서 미술 숙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물감으로 풍경화를 그리는 숙제였습니다.

아이는 먼저 팔레트 위에 여러 가지 색깔의 물감들을 차례대로 짜놓았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붓으로 물감을 듬뿍 찍어 발랐습니다.

그리고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서서히 붓을 도화지 위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에 붓에 듬뿍 묻어있던 물감이 도화지 위로 몇 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도화지는 떨어진 물감 자국으로 얼룩이 져버렸습니다.

아이는 그림을 망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급기야 울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달랬습니다.

"얘야, 괜찮다. 네게는 이 아빠가 있지 않니? 내가 너를 도와줄 테니까 울지 마라."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붓을 건네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수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도화지 위에 떨어진 물감 자국은 아버지의 손이 갈 때마다 풍경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물감 자국은 검은 바위가 되었습니다.

어떤 물감 자국은 나무 뿌리로 바뀌었습니다.

점차로 아름다운 풍경이 도화지 위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그려 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감격해서 손뼉을 쳤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저질러 놓은 실수를 이용해서 오히려 멋진 그림을 그려 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인 우리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우리 삶의 그림이...

우리의 실수와 욕심으로 엉망이 된 것 같아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 암담해서 절망 가운데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믿음으로 우리 삶의 화폭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의 붓으로 우리를 위해서 새롭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어떠한 실수도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실수 했다고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은 그 때부터 우리의 삶을 새롭게 인도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광경을 연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혹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그림을 친히 그리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맨 먼저 하나님은 흑암 가운데서 빛을 그리셨습니다.

"물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

하나님은 하늘도 그려 넣으셨습니다.

"뭍은 드러나고, 땅은 온갖 식물을 내도록 하라."

하나님은 땅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온갖 푸르고 아름다운 산천 초목을 그려 넣으셨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을 그리셨습니다.

물에는 물고기들을, 하늘에는 새들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땅에는 온갖 짐승들을 그려 넣으셨습니다.

맨 마지막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습을 그림 속에 담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세상이 완성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우리 삶의 화폭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면 하나님은 은혜의 붓으로, 능력의 붓으로, 축복의 붓으로 우리를 위해서 언제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그림이 망가졌다 해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 삶의 화폭을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 삶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고 더욱 아름답게 그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라는 나이 늙어 단산했습니다.

잉태하는 힘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산송장 같은 몸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응답에 의심도 했습니다.

정말 암담한 그림이었습니다.

어쩌면 먹물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믿음으로 자신의 삶의 화폭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겼을 때...

하나님은 사라의 그림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고쳐서 그려 주셨습니다.

하늘에는 허다한 별을 그리셨습니다.

해변에는 무수한 모래를 그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열국의 어머니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의 그림을 완전히 다른 광경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여러분의 삶의 화폭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길에 맡겨진 여러분의 화폭을 통해...

오직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어 갈 수 있는 멋진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지혜와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오직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에 맡기는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로 우리의 모든 실수와 허물들을 새롭게 하시고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19

본문: 히브리서 11:8-10절

 

제목: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을 향하여!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셋째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았습니다.

10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여러분!

아브라함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을 사모하면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성, 새 예루살렘 성, 천성, 곧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행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았지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지상의 낙원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땅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위의 것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또한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준 세 번째 믿음입니다.

여러분!

창13장에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질 때 장면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데리고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아브라함은 롯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롯아,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그러니 네가 좋아하는 쪽을 먼저 택하도록 해라."

한 쪽은 비옥한 땅입니다.

그러나 한 쪽은 험한 산지입니다.

롯은 눈을 들어서 요단들을 바라보면서 비옥한 땅을 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험한 산지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연 개의치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나야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섬기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우에서 하나님을 섬기든지, 좌에서 하나님을 섬기든지 간에 나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에 살면서 행인의식, 나그네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면서 그곳을 목적지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여유 있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롯에게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마 6:19-21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역시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나그네는 떠나는 것입니다.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 땅에 너무 집착하거나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하늘의 진정한 본향을 바라보며 그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참 기쁨과 축복과 영광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국의 강철 왕 앤드루 카네기가 남겼던 유명한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자로 죽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다. 돈을 벌기만 하고 남겨놓고 죽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는 자기의 말대로 그가 벌어 놓았던 많은 돈을 깨끗하게 청산하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의 석유 왕 존 록펠러, 자동차 왕 헨리 포드, 강철 왕 앤드루 카네기를 존경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사업에서 크게 성공했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돈을 많이 번 재벌이었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가 훌륭한 자선 사업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맡기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바르고 값있게 사용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빌 3:20의 말씀대로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는 절대로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의 것을 추구하는 돈벌레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고 살아가는 천국 시민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유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발걸음을 따라 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비록 더디어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또한, 우리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천국 백성입니다.

나그네 된 우리의 인생길이 때로는 힘들도 험하고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품고 저 천국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해 나갈 수 있는 보람 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늘의 참 생명과 축복과 영광을 위해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위에서 허락하여 주신 모든 생명과 물질과 건강과 재능으로 오직 천국 복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하늘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18

본문: 히브리서 11:8-10절

 

제목: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둘째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9절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여러분!

아브라함은 드디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 가나안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그곳에 이르렀을 때 그 땅을 즉시 소유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행7:5에서 스데반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살아생전에 그곳에서 발붙일 만큼의 유업도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가 소유했던 유일한 땅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사라를 매장하기 위해서 헷족속에게 샀던 막벨라 밭이 전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었지만 마치 이방인처럼, 외국인처럼 그곳에서 우거했습니다.

타향살이를 했습니다.

더군다나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정착해서 살지도 못했습니다.

장막에 거하면서 이리저리 옮겨 다녔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 이삭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손자 야곱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낙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도대체 왜 이곳으로 왔단 말인가?

내가 이 고생하려고 왔단 말인가?

내가 이렇게 비참한 고난을 당하려고 왔단 말인가?"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늘 머물러 살았습니다.

결코 자기의 본토 친척 아비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9절 말씀도 역시 "믿음으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인내하면서 기다렸던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을 치고 여기저기 옮겨 다녔지만 언제나 그 땅 안에서 맴 돌았습니다.

비록 기근에 의해서 애굽 땅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습니다.

그는 곧 다시 가나안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창24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이 종을 자기의 본토 메소포타미아에 보냈습니다.

자기 아들 이삭의 신붓감을 그곳에서 구해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종이 떠나면서 물었습니다.

"만일 신붓감이 이곳으로 오지 않으려고 하면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인님의 아들을 제가 그곳으로 데리고 가리이까?"

그때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삼가 내 아들을 그리고 데리고 가지 말지어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실 때에 이 땅을 나와 내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니라."

아브라함은 결코 그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일생토록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인내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야곱 때 야곱의 가족들이 모두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400년을 그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다시금 되돌아왔을 때 하나님의 약속은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전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준 두 번째의 아름다운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너무 조급하지 않습니까?

축복도 당장 받아야 되고, 기도 응답도 당장 받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일생은 고사하고 십 년, 아니 한 달도 제대로 기다리지 못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아브라함처럼 먼 안목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암살을 당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서 앤드루 존슨이 미국 17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입니다.

러시아가 미국에 알래스카를 720만 불에 사라고 제의를 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그 땅을 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회에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의원들의 대부분은 극구 반대를 했습니다.

"아니, 우리도 남북전쟁으로 인해서 지칠 대로 지쳐있는데 그런 쓸모없는 눈 덮인 땅을 사서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하는가?"

그때 국무장관 윌리암 슈워드가 나서서 의원들을 잘 설득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알래스카의 눈 덮인 모습을 보고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땅에 묻혀져 있는 무궁무진한 보물들,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지하자원을 생각하면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와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의 간곡한 설득으로 인해 의회가 그 땅을 사는데 동의를 했습니다.

지금의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최고로 큰 주입니다.

소득도 제일 높습니다.

석유를 비롯한 무궁무진한 지하자원이 땅 속에 매장이 되어 있습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윌리암 슈워드는 긴 안목으로 미래를 꿈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알래스카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 알래스카의 중앙을 관통하는 큰 고속도로의 이름을 William Seward Highway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히11:1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미래지향적입니다. 먼 안목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도록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만지지 못하는 것을 만지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현실에만 안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에 믿음의 역사를 막아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

아브라함처럼 먼 안목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믿음으로... 순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응답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인내하며,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우리 삶 가운데 드러내는 귀한 응답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17

본문: 히브리서 11:8-10절

 

제목: 믿음으로 순종하여...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주 말씀에 이어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을 했습니다.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여러분!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그곳은 그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의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갈대아 우르가 속한 메소포타미아지방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한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아브라함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갈대아 우르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수 24:2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그곳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곳에서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이미 75세였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다른 곳으로 떠났다가도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 나이에 그의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하나님, 제가 이 나이에 떠나기는 어디를 떠납니까?"

아브라함은 그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 했습니다.

더군다나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제 이곳을 떠나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합니까?"

아브라함은 이것저것을 재거나, 따져보거나, 계산하면서 거역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아브라함은 그 즉시 무조건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를 못했지만 이삿짐을 다 챙겨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나섰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 8절은 "믿음으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이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준 첫 번째의 믿음이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못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후손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창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도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자기의 본토를 떠났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와 그의 후손을 위한 기업으로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자신의 친척과 아비집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열국의 아버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셨던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도 택하여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우리의 갈대아 우르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죄의 땅, 죄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죄를 범하고 있는 자리에서 과감히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예수님의 좁은 길, 생명의 길로 출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죄와 우상의 나라 애굽 땅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앞서 가시면서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홍해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을 때, 하나님은 홍해를 친히 가르셨습니다.

그들이 주릴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들이 목말라 할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 축복의 손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를 우리는 늘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하기에...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손길을 체험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과학자였던...

벤자민 플랭클린은 그의 노년에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첫째, 나의 삶이라고 해서 내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둘째, 내 삶을 온전히 주관하신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셋째,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만큼 내게는 행복이 있었고, 내게는 성공이 있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천국복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귀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 말씀만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하심과 능력과 축복을 맛보며 우리의 삶을 통해 천국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14

본문: 히브리서 11:8-10절

 

제목: 의심하면 믿을 수 없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계속에서 믿음의 인물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를 믿지 못하게 하는 사단이 주는 고약한 마음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의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원합니다.

어떤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쩌다가 그의 도끼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옆집에 사는 아이가 의심이 갔습니다.

그 아이가 훔쳤다는 생각이 그에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아이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의 얼굴표정이나 하는 몸짓을 보아서 자기의 도끼를 훔쳐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무꾼은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자기가 잃어 버린 도끼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무꾼은 자기가 실수로 그곳에 도끼를 떨어뜨려 놓고서는 괜히 옆집에 사는 아이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그 아이를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의심하는 마음이 사라지자...

그 아이는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너무나도 순진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 아이의 얼굴 표정이나 하는 몸짓으로 보아서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댈 아이로는 전연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애당초부터 이 아이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나무꾼의 시각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여러분!

결국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자기가 고쳐야 할 고질적인 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의심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모든 모습과 표정과 행동 하나 하나가 의심스럽게 보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의 예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미국의 선교사님들이 처음으로 왔을 때입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의료시설은 좋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어떤 양반이 선교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몸에는 심한 종기가 돋아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몸이 아프니까 염치 불구하고 선교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자기의 환처를 선교사님에게 보이면서, 그는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선교사님, 보시다시피 제 몸에 심한 종기가 생겼습니다.

듣자하니 선교사님에게는 좋은 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체면 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저를 좀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선교사님은 그에게 페니실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최근에 개발된 아주 좋은 항생제입니다.

이것을 드시면 몸이 괜찮아지실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고서 물었습니다.

"약값은 얼마입니까?"

선교사님은 선교할 목적으로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공짜입니다. 그냥 드릴 테니까 집에 가셔서 드십시오."

그는 그것을 받아 쥐고 나오면서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공짜로 주는 것을 보니까 아무래도 이것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인가보다.”

그러면서 그는 그 귀한 약을 모두 길거리에 내버렸습니다.

쓸데없는 의심이 일어나서 그 약을 먹지 않았으니 그의 병이 어찌 쉽게 나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하늘의 축복을 아무 댓가 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으면 삽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죽습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그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땅을 정탐하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그 땅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어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십시다."

그들은 믿음으로 그 땅을 밟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열 정탐꾼은 불신앙의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땅을 악평했습니다.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입니다. 우리는 그 땅에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의 불신앙 때문에 축복의 땅을 밟지를 못했습니다.

자기들만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을 상실하는 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자기만 불행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불행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의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의심하면 안 됩니다.

의심하는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은 온통 검은 먹구름으로 가리워져서...

사단의 종으로 이 어둠과 죄의 사슬에 묶여 지옥으로 끌려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먹구름과 같은 의심은 모두 깨쳐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의 사랑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바라고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13

본문: 히브리서 11:7절

 

제목: 의의 상속자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셋째로, 믿음으로 노아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 하반부입니다.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여러분!

상속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기에게 있는 것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창6:9절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7:1절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 가운데 노아는 최초로 의롭다고 불리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는 믿음을 좇아서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

"The Righteous Shall Live by Faith."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노아의 믿음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지금가지 우리가 살펴 본대로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받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따랐습니다.

믿음은 결코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입니다.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실제적입니다.

예를 들어 아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벨의 믿음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나타났습니다.

에녹의 믿음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드러났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받아 순종하는 삶으로 드러났습니다.

부디 아벨의 믿음, 에녹의 믿음, 노아의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으로 이 마지막 세대를 승리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24장에서 예수님은 말세에 있을 여러 가지 징조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의 모습은 노아 시대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져 갑니다.

세상은 점점 죄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마지막 때의 징조들로 넘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시대의 타락상을 개탄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악 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게 변명하실 말씀이 없으실 것이다."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이 시대도 심판을 하셔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대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노아 때와는 두 가지 면에서 다를 것입니다.

첫째,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벧후 3:10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뜨거운 불로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는 하늘은 큰 소리를 내면서 떠나가고, 체질은 뜨거운 불에 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이 시대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문자 그대로 최후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또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마지막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오직 믿음으로 이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방주 안에 있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노아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첫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믿음으로 세상을 정죄하면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믿음으로 의의 상속자가 되기 원하십니다.(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상속자!!!)

여러분!

이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도 경외함으로 말씀을 받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타락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을 정죄하면서 살았던 노아처럼...

여러분 모두도 담대하게 죄악 된 세상을 정죄하면서 세상을 극복하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대장부가 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노아가 믿음을 좇는 의의 상속자가 된 것처럼 여러분 모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의 상속자가 되어서...

노아처럼 이 시대의 의의 전파자로서 우리 주변에서 사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힘써 증거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노아의 믿음을 본 받아 오직 말씀으로 승리하며 천국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의의 상속자답게 오직 천국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우리의 삶 속에 드러낼 수 있는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방황하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며 그들에게 오직 천국의 참 생명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12

본문: 히브리서 11:7절

 

제목: 세상을 정죄하는 믿음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둘째로, 믿음으로 노아는 세상을 정죄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 중반부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벧후 2:5을 보면 노아를 가리켜서 "의의 전파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노아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파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노아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외쳤습니다.

노아에 대한 전승 하나가 있습니다.

노아는 높은 나무에 큰 종 하나를 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에 세 번씩 그 종을 세게 쳤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힘써 외쳤습니다.

"Judgment is coming; judgment is coming; judgment is coming."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심판이 가까웠습니다.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노아는 힘써 외쳤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노아에게 돌을 던지며 그를 비웃었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 시끄럽게 종은 왜 쳐!"

그러나 노아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120년 동안 노아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그들에게 외쳤습니다.

노아는 의의 전파자로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방주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노아는 자기의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차마 노아는 방주의 문을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몇 사람이라도 방주 안에서 들어와서 구원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누가 방주의 문을 닫았습니까?

창7:16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그 문을 닫아버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문을 닫으셨더라”

마침내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홍수에 의해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핑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완성하는 120년 동안,

하나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고서 돌아오기를 바라시면서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훨씬 그 이전부터 기다리고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에녹의 믿음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다서 14-15절의 말씀대로

에녹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들의 경건치 않은 일과 그들이 주께 거스려 한 경건치 않은 말에 대해서 정죄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에녹에게 므두셀라라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계시적인 이름이었습니다.

"므두"는 히브리어 동사 "죽다"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셀라"는 히브리어 동사 "보낸다"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이 두 단어를 합치면 이런 뜻이 됩니다.

"When he is dead, it shall be sent. 그가 죽을 때, 그것이 보냄을 받으리라."

므두셀라가 죽을 때 무엇이 이 땅에 보내진다는 것입니까?

세상을 쓸어버린 대홍수를 하나님께서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대홍수가 일어났습니다.

그 해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였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완성되던 때였습니다.

여러분! 므두셀라가 몇 세를 살았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인물 가운데 가장 오래 산 사람입니다. 969세를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므두셀라가 죽기까지 심판을 유보하시면서 기다리셨습니다.

충분히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천년을 하루같이 죄인들을 위해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에녹을 통해서, 므두셀라를 통해서, 노아를 통해서 경고의 말씀을 주시면서 하나님은 기다리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24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당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그들을 모두 멸하기까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죄악 된 세상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만큼은 타락한 세상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의 전파자로서 세상을 정죄하면서 세상을 극복하고 이겼습니다.

여기에 검은 색의 물체가 있습니다.

주변에 검은색만 있으면 그 검은색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흰색이 있으면 그 물체의 검은색이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노아는 그 당시 사람들의 불신앙을 정죄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노아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타락했더라도...

우리만큼은... 진정 하나님의 믿음의 자녀들만큼은...

노아처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말씀과 기도 안에서...

어둡고 타락한 세상에 물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타락한 세상의 가치관에 휩쓸려 살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아처럼 담대하게 세상을 정죄하면서 세상을 극복하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대장부들이 모두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세상의 죄에 물들어 그 죄악에 휩쓸려 살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믿음으로 세상의 죄를 정죄하며 그 세상 가운데에 복음의 빛을 발하며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증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하늘의 평강과 축복이 넘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11

본문: 히브리서 11:7절

 

제목: 노아의 순종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구체적으로 노아의 믿음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 상반부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그렇습니다.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았습니다.

홍수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로부터 경고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야,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내가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을 때, 노아는 어떠한 태도를 취했습니까?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여겼습니까?

사울 왕처럼 이런저런 구실을 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까?

아닙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기에 노아는 그대로 믿었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것은 한 두 달, 일 이 년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120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만들고 또 만들어야 되는 일입니다.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천천히 만들어도 되겠지.'

노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즉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땀 흘리면서 부지런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시작한지 10년이 지났습니다. 20년이 지났습니다.

50년이 지나고, 6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혹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면서 중단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대로 이루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짓고 또 지었습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도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저 사람! 정신 나간 사람이구나! 홍수가 나기는 무슨 홍수가 난다고 그래? 완전히 미쳤어!"

“그것도 산 위에 배를 만들다니! 정말 미친사람이야!”

그러나 노아는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에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비웃든지 말든지 간에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믿음이었습니다.

노아는 진정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때로는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바보 같고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우리는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물질도 드려야 합니다.

재능으로 헌신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도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겠습니까?

미국에 사는 어떤 사람의 예화입니다.

그는 산책할 때마다 두 개의 광고판을 자기 몸의 앞뒤에 붙이고 나갑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들은 샌드위치맨 이라고 부릅니다.

앞에 있는 광고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I am a fool for Christ. 나는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로서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몸 뒤에 있는 광고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Whose fool are you? 당신은 누구를 위한 바보입니까?"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세상 사람들이 눈으로 보면 바보 같고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믿음에 아름답게 보상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믿음에 어떠한 보상을 주셨습니까?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홍수가 날 때 노아와 그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노아의 행동이 미련스럽게 보였지만,

하나님은 노아의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그 믿음에 아름다운 보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의 모든 전문가적인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많은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그 믿음에 아름답게 보상을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고 가볍게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가볍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받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높여 주십니다.

세계 제일의 갑부였던 존 록펠러의 어머니는...

그의 아들에게 언제나 세 가지를 교훈 했다고 합니다.

첫째, "너는 예배드릴 때 언제나 앞자리에 앉아라."

그의 어머니가 항상 앞자리에 앉으면서 아들에게 그것을 강조했습니다.

둘째, "너는 소득의 십의 일을 하나님께 반드시 드려라."

많든 적든지 간에 어릴 때부터 그에게 십일조 하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셋째, "너는 주일 날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라."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받도록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서 존 록펠러는 그토록 훌륭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도 경청하여 들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들은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령과 삶을 하늘의 풍성한 은혜와 평강과 축복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오직 하나님 말씀만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손길을 경외함으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 풍성하신 하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10

본문: 히브리서 11:7절

 

제목: 노아의 믿음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였던 아인슈타인 박사가 상대성 원리를 연구하고 발표했을 때였습니다. 그의 이론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에서 그에게 많은 강연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녹음기도 없고,

비디오도 없어서 아인슈타인 박사가 직접 그곳으로 가서 강연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에게는 조수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그림자처럼 아인슈타인 박사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때로는 비서의 역할도 하고,

때로는 운전기사의 역할도 했습니다.

하루는 아인슈타인 박사가 어느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도록 초청을 받았습니다.

아침에 출발을 하면서 조수가 넌지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박사님, 오늘은 제가 박사님 대신에 강의를 한번 해 보면 어떨까요?

제가 박사님의 강의를 수십 번 반복해서 듣다 보니까 이제는 저도 어느 정도 도가 트였습니다. 박사님의 강의 내용을 환하게 제가 모두 암기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본시 유머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즉시 그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거 참, 멋진 제안일세.

그러면 오늘 하루는 자네와 내가 모든 것을 한번 바꾸어서 해보기로 하세."

그래서 그 날은 아인슈타인 박사가 조수의 모자를 받아서 푹 눌러 쓰고서 운전대를 쥐었습니다. 그 대신 조수는 아인슈타인 박사인 것처럼 행세를 하면서 자동차의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드디어 강연을 하게 된 대학교에 도착을 했습니다.

강의실에 들어선 아인슈타인 박사는 학생들 사이에 끼어서 한쪽 구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서 조수가 강단에 올라서서 강의를 했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뒤에 앉아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그의 조수가 기가 막히게 강의를 잘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막히는 부분이 없습니다.

강의가 성공리에 잘 끝났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조목조목 따지면서 질문을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그 교수가 하는 질문을 듣고 있던 아인슈타인 박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의 조수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이렇게 받아넘겼습니다.

"아이고, 그것을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그런 유치한 질문은 저기 앉아있는 제 조수조차도 쉽게 답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인슈타인 박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 대신 자기는 손을 흔들면서 유유히 강단에서 내려갔습니다.

그의 용기, 그의 느긋한 마음의 여유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아인슈타인 박사가 그를 든든히 받쳐 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장장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지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노아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정말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전연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든든히 받쳐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뿐...

그 나머지 모든 일들과 상황들과 사람들의 모든 손가락질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뒷처리 해 주실 든든한 하나님이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노아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 뒤에서 전능하신 능력의 손길로 여러분을 도와 주시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삶의 모든 상황이 여러분 마음속에 짐으로 다가오고 있을지라도...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등 뒤에서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잠잠히 오늘 하루도 그저 묵묵히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 하루도 여러분의 삶의 모든 것을 아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와 능력의 손길로 함께하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축복의 손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등 뒤에서 항상 지켜보시고 능력의 손길로 함께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와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만 영광 올려드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07

본문: 히브리서 11:5-6절

 

제목: 믿음의 사람 에녹!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마지막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셋째로 에녹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 가진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잘해서, 성공했기에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배운 것이 없어도, 가문과 명예와 배경이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일하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세상 요건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에녹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에녹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다.

그 결과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영화로운 천국으로 옮겨질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에녹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첫째, 에녹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둘째, 에녹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첫 걸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마음대로 죄도 짓고, 나쁜 짓도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인생을 함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마치 CCTV 앞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카메라에 보여 질 자신의 모든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어떤 소년원에서 정기적으로 예배를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께서 예배를 인도하던 중 낯이 익은 소년 하나가 보였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소년은 소매치기를 하다가 붙잡혀서 복역이 다 끝나고 난 뒤에 만기 출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소년원에 들어온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 목사님은 그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너 왜 또 들어왔니?"

그러자 소년은 원망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다 목사님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왜 네가 나 때문에 이곳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는 말이냐?"

그 소년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제가 출소하자 전에 같이 일하던 형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다른 것을 배운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형들과 다시금 소매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매치기를 할 때마다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든지 계셔서 모든 사람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소매치기 할 때마다, 정말 누군가가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말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자연히 제 손놀림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 목사님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모든 사람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인생을 함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일성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도 인색하다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하게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그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300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어떠한 상을 주십니까?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의 마음속에 구속의 은총과 기쁨과 감격을 허락해주십니다.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도 주십니다.

하늘의 평강도 주십니다.

영원한 천국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들입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부디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에녹의 믿음을 소유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믿고 동행하는 사람에게 하늘의 상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성령님과 함께 좁은 길을 걸으며 기쁨과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귀한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여호와 이레와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을 체험하며 간증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늘의 평강과 기쁨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06

본문: 히브리서 11:5-6절

 

제목: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 이어서...

두번째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5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여러분!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살지 않아서 쳐다보는 것만 해도 지긋 지긋하다고 이혼을 해버립니다.

이토록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아울러 사람이 누구를 기쁘게 한다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인 일입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귀찮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열심히 구제를 하고, 열심히 기도도 하고, 열심히 금식도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 기쁘게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했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자라"하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에녹은 노아의 홍수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던...

인간의 죄악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 에녹은 세상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벗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300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더불어서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아벨은...

그의 믿음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 곧 예배드리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에녹은 믿음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그는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나타났습니다.

말하자면 에녹은 "Sunday Christian"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형식적인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진정 하나님 보시기에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에녹은 날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으로 그의 믿음이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해 주신 것입니다.

어떤 주일학교 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구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선생님의 집도 팔고, 차도 팔고 모든 것을 다 팔아서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면 선생님이 구원을 얻을까요?"

아이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선생님은 자기반 아이들에게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구원을 받으려면 모든 일을 다 그만두고 교회 와서 유리창 닦고 청소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

아이들은 또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요, 저요! 선생님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먼저 죽으셔야 해요."

여러분! 엉뚱한 대답이었지만 일리 있는 말입니다.

아니 정답입니다.

에녹은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에녹은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의에 대해서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에녹은 육신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영에 대해서 산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직 믿음으로 자신은 죽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기에...

하나님을 기뻐하게 할 수 있는 증거를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오늘 하루도 이 어두운 세상과 부패한 세상에 물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에녹처럼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기 원합니다. 오직 믿음 안에서 우리의 모든 입술의 열매와 삶의 열매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사랑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사랑의 역사가 드러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05

본문: 히브리서 11:5-6절

 

제목: 죽음을 보지 않고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은...

에녹의 믿음을 세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신앙의 역순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웠습니다.

5절 상반부의 말씀입니다.

둘째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5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셋째로, 에녹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거꾸로 우리가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에녹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 결과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첫째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5절 상반부의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대할 때 언뜻 머리에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하면 "노예 해방"이 연상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데반하면 "천사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하면 "눈물의 선지자"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에녹이라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연상이 됩니까?

"승천한 사람," 곧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사람"이 연상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창5장에 보면 아담 자손의 계보가 등장 합니다.

각 사람의 계보가 일정한 양식에 의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의 일생을 마무리할 때는 언제나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몇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이 말로 끝맺음을 합니다.

그런데 에녹만큼은 예외입니다.

창5:24에 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그렇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사람입니다.

엄청난 축복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기운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선지자 엘리야였습니다.

왕하2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엘리야가 그의 제자 엘리사와 더불어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홀연히 하늘에서 불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났습니다.

두 사람 사이를 떼어 놓았습니다.

그러더니 엘리야는 회리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리워졌습니다.

요단강 맞은편에서 이 모습을 보던 선지 생도들은 엘리야가 승천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회리바람에 휩쓸려 올라갔다가 어디론가 그 시체가 땅에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엘리사를 강권했습니다.

엘리야의 시체를 찾기 위해 용사 오십 인을 보냈습니다.

사흘 동안이나 엘리야의 시체를 부지런히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들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나라로 인도해 가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운다는 사실은 일반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너무나도 극적인 사건입니다.

에녹은 그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겨졌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사망이 왕 노릇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망에 매여서 더 이상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망의 권세는 우리를 결코 삼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요11:25-26의 말씀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들도 사망의 권세를 이미 이겼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겼고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사망을 향해서 담대하게 외칠 수가 있습니다.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7절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물론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사망의 관문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사망은 단지 우리를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 예수님께서 영광가운데 구름타고 다시 오신다면,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것처럼 우리 모두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지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에녹을 천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도 반드시 저 영화로운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옮긴다"는 단어가 세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녹이 스스로 옮겨진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에녹을 천국으로 옮기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녹의 삶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의 삶을 인도해주시고 결국은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에녹을 천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반드시 영화로운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이러한 믿음으로 천국의 소망을 붙잡고 하나님 나라를 여러분의 삶 속에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죽음을 두려워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길 그 날을 바라보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그 하나님 나라를 우리의 심령과 삶의 자리에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04

본문: 히브리서 11:5-6절

 

제목: 믿음의 중요성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본문 말씀의 핵심인...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 말씀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에녹의 믿음에 대하여 살펴보기 전에...

진정 우리 신앙인들에게 왜? 그토록 믿음이 중요한가?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국의 어느 대학촌 주변에 30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그 맨 꼭대기 층에 가난한 세 사람의 대학생이 함께 어울려서 자취생활을 했습니다.

맨 꼭대기층이 값이 제일 싸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법학도였고, 다른 한 사람은 철학도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슈퍼마켙에 들러서 간단하게 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아파트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정전이 되어서 엘리베이터가 가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관리실에 물어보니까 몇 시간 뒤에라야 전기가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어서, 운동 삼아 천천히 걸어서 아파트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10층씩 나누어서 자기가 전공하는 과목을 다른 두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먼저 법학도가 입을 열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서 살 수는 없다. 따라서 인간사회에 있어서 질서는 필수적이다. 이 세상에 질서가 없다고 상상해 보아라. 얼마나 혼란스럽겠느냐? 그러니 질서를 잡아주는 법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러면서 그는 법학의 중요성에 대해서 역설을 했습니다.

다음 차례는 철학도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형이상학적인 질문들만 계속해서 쏟아놓았습니다.

예컨대 이러한 질문들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철학도는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질문들, 자신도 시원하게 답변할 수 없는 질문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신학도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신학의 우월성에 대해서 역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이야말로 모든 학문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다. 그 이유는 신학은 절대자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어느덧 꼭대기 30층까지 다 이르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신학도가 정신이 번쩍 난 듯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세상에 이런 멍청한 사람들 다 보겠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라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아파트 문을 여는 열쇠라네."

그들은 관리실에 아파트 열쇠를 맡겨놓고서 그냥 빈손으로 꼭대기까지 걸어서 올라왔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다시금 걸어서 밑에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천국이라는 본향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이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천국의 열쇠가 없으면 우리의 인생 길은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천국 열쇠를 준비하는 것에는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천국 열쇠 없이 하루 하루 천국을 말로만 이야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천국의 열쇠는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천국의 열쇠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를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을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지 천국의 열쇠가 주어집니다.

우리는 요 3:16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지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를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천국의 열쇠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믿음은 절대적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여러분 심령 안에 허락하여 주신 이 귀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늘 하루도 오직 믿음으로 담대하게 천국 문을 향해...

예수님 가신 진정한 생명과 축복의 길로 한 걸음 가까이 걸어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들에게 천국 문을 열수 있는 열쇠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그 열쇠를 소유하기 원합니다. 오늘도 이 아침 시간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귀한 믿음이라는 천국 열쇠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3.03

본문: 히브리서 11:4절

 

제목: 지금도 말하느니라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보면...

아벨은 죽었지만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흔히 집에 손님들이 올 때 음식을 정성껏 장만을 해서 대접을 합니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마련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손을 대지도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마련했는데 저런 식으로 음식을 대하는거야.

내가 다시는 초대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모임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자기입니다.

손님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손님들이 맛없어 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것을 자기 반성의 계기로 삼고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 내가 실수했구나! 다음 번에는 손님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더 맛있게 장만을 해서 대접을 해야겠구나!"

이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 아닌 손님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제사, 순종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달랐습니다.

자기가 잘못했으면 뉘우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안색이 변할 정도로 몹시도 화를 냈습니다.

결국 그 화를 참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시기해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아벨은 형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의로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벨은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누구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아벨은 하나님에게 말합니다.

창4:10입니다.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아벨은 죽었지만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의 피, 순교자의 피를 사람들은 몰라줄 수가 있습니다.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고 상주십니다.

계 6:10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순교자의 피를 신원해주십니다. 갚아주십니다.

둘째로, 아벨은 가인에게 말합니다.

창4:11입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아벨은 자기를 죽인 형에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동생 아벨도 거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의로운 아벨의 피를 받은 땅,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도 가인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인이 저주받은 땅을 갈 때마다 이런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내가 의로운 내 동생 아벨을 죽였구나!"

셋째로, 아벨은 우리에게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히10:38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The Righteous Shall Live by Faith."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진리를 아벨은 지금도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나의 형 가인처럼 인간의 의, 인간의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마십시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촛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한 가지 진리를 잊지 말고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벨은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과 사랑이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히 넘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오직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순종의 삶과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외치는 복음의 선포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늘의 놀라운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2.28

본문: 히브리서 11:4절

 

제목: 믿음으로 의로운 자라 증거를 얻었으니...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말씀에서...

우리는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둘째로,

아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4절 중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가인도 아벨도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가인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벨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가인은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은 믿음이 없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돈의 초청을 받고 오래간만에 출가한 딸네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딸은 모처럼 친정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래서 온갖 솜씨로 진수성찬을 마련해서 아버지에게 대접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녁을 마친 후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묻습니다.

"여보, 모처럼 딸네 집에 갔는데 대접을 잘 받고 돌아오셨겠지요?"

그런데 남편에게서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다시 묻습니다.

"아니, 딸이 모처럼 친정아버지를 뵈었는데도 대접을 시원치 못하게 했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그는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식을 잔뜩 차려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달걀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두부도 없던걸. 이가 시원치 않은데 그 질긴 음식들을 도대체 날더러 어떻게 먹으라는거야?"

그렇습니다. 여러분!

음식을 잔뜩 차려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드려야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음식을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 못하는 것은 고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면서 잘 믿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 입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가인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롬10:3의 말씀대로,

가인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느라고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복종치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제사를 자기방식으로, 임의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를 어찌 의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벨은 달랐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순종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드린 제사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아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벨만 의롭다고 하시고 가인은 의롭다고 하시지 않은 것을 우리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에 대하여 증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열납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제물을 열납하실 때 하늘에서 불을 내려 보내셔서 그 제물을 사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 장면입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각을 떴습니다. 나무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후에 그들은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바알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끝내 바알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각을 떴습니다. 나무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주변에 도랑을 팠습니다. 물을 채웠습니다.

물을 퍼다가 번제물과 나무위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렇게 한 뒤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왕상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자마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습니다.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태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불은 먼저 번제물을 태웠습니다.

그 밑에 있는 나무를 태웠습니다.

돌과 흙을 태웠습니다.

도랑에 있는 물을 핥았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제물을 열납 해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이 보는 눈 앞에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셨고 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은 분명 두 제사에 대하여 구분 짓는 역사를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벨은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는구나.'

그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자기의 예물이 열납 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안색이 변할 정도로 심히 화를 냈습니다.

창 4:3-5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떠한 심정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가인처럼 인간의 의, 인간의 행위를 가지고 나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벨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촛점을 맞추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구하면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용납해주십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에게...

오늘도 이 놀라운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과 보혈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순종이 나의 자랑과 의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의로운 순종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오직 말씀안에 거하며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세상 자랑과 나의 의와 교만과 욕심을 죽이고 성령으로 승리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2.27

본문: 히브리서 11:4절

 

제목: 더 나은 제사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더 낫다는 말은 물론 양적인 의미가 아니라 질적인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가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인간적인 의입니다.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들보다 더 나은 의, 질적으로 전혀 다른 의가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 나은 온전한 의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인과 아벨은 질적으로 다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한마디로 가인의 제사는 믿음이 없는 제사, 인간의 의를 강조하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믿음으로 드린 제사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촛점을 맞춘 제사였습니다.

창4장에 기록된 대로 가인과 아벨은 형제였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난 뒤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그 후에 태어난 아들들이 가인과 아벨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롬10:17의 말씀대로,

그들은 자기들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법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똑같은 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각자가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내용이 달랐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자였고...

땅의 소산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반면에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습니다.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겉보기에는 가인의 제사가 더 풍성하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땅의 소산물로 하나님께 드리니까 얼마나 종류가 많았겠습니까?

보기에도 깨끗하고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아벨은 단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양의 첫 새끼였습니다.

그것도 산채로 드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기름으로 드렸으니까 양을 잡아 죽여서 피를 흘려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양의 몸에서 흘린 피가 제단을 붉게 물들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의 제사가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였습니다.

왜 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기 임의대로 아무렇게나 제사 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규례대로 제사 드리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에게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주었을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와 장소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제물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에게 이렇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얘들아,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죄를 짓고 말았단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죄 된 모습을 가리기 위해서 어리석게도 무화과나무의 잎을 엮어서 우리 스스로 옷을 만들어서 가리워 보려고 했었단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노릇이었지! 우리 손으로 만든 옷은 우리의 죄 된 모습을 결코 가릴 수가 없었단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 된 모습을 가리워주시기 위해서 친히 옷을 만들어 주셨단다. 하나님은 짐승을 잡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서 우리의 수치를 가리워 주셨어!"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가인과 아벨이 무엇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들의 죄 된 몸을 가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만든 옷이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만들어주신 옷을 입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죄를 덮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울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는 피흘림의 제사가 요구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죄 사함을 위해서는 피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어떤 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까?

자기방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내가 왜 죄인인가? 나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으면 지었지, 내가 왜 그 죄를 그대로 물려받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땀 흘리면서 열심히 농사를 지었을 뿐인데... 나는 내 식으로 제사를 드릴거야."

물론 구약 성경에 보면 농산물로 제사를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한 제사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피흘림의 제사를 드리고 난 뒤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소제, 곧 피없는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이미 이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 9: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죄 사함을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의 제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가인은 그것을 무시해버리고 자기방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가인의 제사는 한마디로 불순종의 제사였습니다.

비 신앙적인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믿음의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 양처럼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이 양의 피와 기름을 받으시고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세요!"

이 믿음이 아벨에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리고."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자기의 의, 인간의 행위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오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제사를 드릴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여러분의 부패하고 더러운 심령을 찢는 애통함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께서 흘려주신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우리도 우리의 심령을 찢고 회개하는 하나님 기뻐하실 산 제사를 올려드리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뜻과 경험과 우리의 모든 세상에 대한 의로움과 자랑을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의만을 드러낼 수 있는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2.26

본문: 히브리서 11:3절

 

제목: 피조물의 감사 찬양!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진정 하나님께서 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이 진리를 알고 깨달은 사람은 어떠한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자녀에 대한 부모의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그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효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신앙인이라면...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효도하면서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1. 먼저, 첫째로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고 그 영광은 예배와 찬송을 통해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사야 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자녀에게 거저 주셨지만 그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그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녀의 당연한 의무라는 말씀입니다.

2. 둘째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 보면 여러분!

아담의 큰 실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먹을 것을 허락해 주셨지만...

선악과 만은 먹지 말라고 금지하셨습니다.

이것은 순종의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의 것에는 절대로 손대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 먹어도 되지만...

하나님 주신 모든 것 중에는 반드시 손을 대면 안 되는 하나님의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화와는...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서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지 않고 불순종하여 자기 마음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도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내게 주신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모두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나 물질이나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나를 위해서 사용해야 할 것과 하나님을 위해 드려야 할 것을 반드시 구분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 근원이며 축복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3. 셋째로 인간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창세기를 읽어보면...

창조기사 뒤에 바로 기록된 것이 바로 인간의 타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만물을 창조하심을 기록한 목적이 그런 인간이 그렇게 쉽게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게 훌륭하게 인간을 만들고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셨는데...

인간은 그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교만이 바로 그대로 인간의 교만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사단 마귀의 종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고 우리의 죄인 됨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4. 넷째로 예수님을 통한 구속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이 사단의 종으로 타락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에게 짐승의 잡아서 피를 흘리게 하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셨습니다.

그 의미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한 구속을 미리 예표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은혜가 있기에...

우리가 다시 천국 백성만이 입을 수 있는 빛의 옷, 세마포 옷,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새롭게 입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5. 마지막 다섯째로 창조 신앙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는 우연히 이 세상에 생겨난 존재가 아닙니다.

어쩌다가 저절로 생겨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창조한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우주 만물도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창조해 주셨습니다.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의 자녀답게...

오직 믿음으로 이 땅위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고...

우리의 심령과 삶 속에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저 천국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찬양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주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으로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드리며...

여러분의 삶 속에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에 힘입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의 능력과 우리 죄인들을 향하신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 은혜와 사랑에 깊은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며 우리의 죄인 된 모습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오직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겸손한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2.25

본문: 히브리서 11:3절

 

제목: 믿음으로 아나니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진화론이 거짓이라는 증거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 과학이라는 분야가 발전하면서...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온 우주 만물은 그냥 우연이 발생된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그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정교하고, 세밀하고, 과학적인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문학에서도 밝혀지고 있고...

지질학에서도 지구의 기원이 창세기에 있음을 밝혀지고 있습니다.

생물학에서는 사람의 세포와 DNA 연구를 통해...

너무나 놀라운 창조자만이 만들 수 있는 정교함에 놀란다고 합니다.

의학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의학박사 허버트 벤슨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두통을 없애준다.

협심증을 제거한다(적극적인 믿음은 80%의 협심증 환자를 고칠 수 있다)

창조력을 증진시킨다.

불면증이 사라진다.

중풍을 예방한다.

혈압을 감소시켜 고혈압 치료에 도움을 준다.

암 치료에 유익하다.

공포로 인한 충격을 조절해 준다.

콜레스테롤의 함량을 낮춘다.

근심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증세인 설사, 구토, 변비, 불안, 울화병,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증세등을 제거해 준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의 평안과 감정의 균형을 가져다 준다.

나는 결코 종교나 철학적인 것에 관심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고찰한 바에 의하면 '믿음'이라는 현상이 위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의학적인 효능이 있음을 밝혀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증거는...

오히려 현대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수 많은 증거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적인 증거가 없어도...

더욱 놀라운 사실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알게 됩니다.

과학적인 증거를 공부하거나 연구하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증거가 없어도 알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현대어성경에서는 조금 쉽게 번역을 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으며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수 많은 과학적인 증거를 보여 주어도...

수 많은 성령의 기적과 표적을 보여 주어도...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이 사실을 인정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으면...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늘의 영원한 생명과 축복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문제는 많은 성도들에게 진정한 믿음이 없기에...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 땅의 것만을 좇아서...

이 땅의 즐거움과 만족과 쾌락을 위해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오직 창조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 세상이 아닌 하늘의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위해서...

진정 하늘 나라에서 누릴 나의 것을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주님! 오늘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구원자 되시며 축복의 근원되심을 깨달아 알아가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기도와 간구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의 역사과 능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믿음의 증거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2.24

본문: 히브리서 11:3절

 

제목: 창조주 하나님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흔히...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적인 일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보며...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해서 기도를 하면 기적적으로 그 일을 해결해 주시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보여지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은 무능하시거나 안 계신 분이라고 말해버립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을 했건...

체험하지 못했건...

중요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것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온 우주 만물을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의 말 속에도 능력이 드러납니다.

화분에 좋은 말, 긍정적인 말, 사랑과 축복의 말을 선포하면 잘 자라납니다.

반대로 욕을 하고, 부정적이고 더러운 말을 하면 그 화분은 곧 말라 죽어 버립니다.

방송국 아나운서들이 실험한 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공기 안에 밥에 긍정적인 말을 하면 좋은 곰팡이가 피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나쁜 곰팡이가 피는 것을 실험했습니다.

또한, 사람의 한 마디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말로 사람의 영혼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 18:20-21

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의 말에도 이러한 능력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떤 능력이 있는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면 모든 우주만물이 만들어 질 만큼 그 말씀의 능력은 상상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대통령이 고속도로 만들라고 지시하는 순간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있으라... 선포하시는 모든 말씀 속에...

온 우주 만물과 지구와 모든 자연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렇게 당치도 않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만 이해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세계를 지으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이 사실이 믿어진다면...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의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만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축복을 맛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사람과 세상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기적과 같은 역사들을...

마치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창조의 역사를 우리의 믿음의 눈으로 직접 보게 하십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여러분의 모든 삶 속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들을 맛보고 체험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심을 때에 그 능력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깨달아 알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믿음으로 기도하는 간구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귀한 씨앗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2.21

본문: 히브리서 11:1-2절

 

제목: 믿음의 증거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란?

세 번째로 불가능한 일들을 이루는 증거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희망사항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 진실하다면 믿음은 반드시 구체적인 열매와 증거를 맺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그것을 선진들 곧 믿음의 선배들이 믿음으로 증거를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증거라는 말은 법적인 효력이 있는 증거라는 말입니다.

심증이 아니라 물증입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성경 안에 기록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주신 믿음의 증거가 있으십니까?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체험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의학이 아닌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로 병을 고쳐주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신 놀라운 경험들이 있으십니까?

하지만 여러분!

더욱 중요한 믿음의 증거, 믿음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생활 중에서 함께하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손길을 우리는 체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은혜를 깨달아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대형 유람선 위에서 있었던 일화 입니다.

그 배의 선장이 메이어 목사님에게 일등칸에 있는 승객들을 위해서 한 말씀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 요청에 따라 메이어 목사님은 응답되어진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어느 불신자가 그 강의를 들었습니다.

친구들이 그 강의에 대한 견해를 묻자 그는 한 마디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오후 메이어 목사님은 4등 칸에 있는 승객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갔습니다.

아침에 그의 말씀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같이 따라갔고, 그 불신자도 함께 갔습니다.

그는 "이 허풍쟁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 들어 보려고" 간다고 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이 불신자는 오렌지 두개를 주머니에 넣고 갔습니다.

강당으로 가는 길에 그는 어느 나이 든 할머니의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갑판의 의자에 앉아서 자고 있었습니다.

재미삼아 불신자는 오렌지 두개를 할머니의 손에 놓고 왔습니다.

모임이 끝난 후...

이 불신자는 할머니가 오렌지를 행복한 표정으로 맛나게 먹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렌지가 아주 맛있나 봅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물론입니다,"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너무나도 좋으신 분이십니다."

"할머니의 아버지요?" 그가 물었습니다.

"할머니의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계신단 말입니까?"

"할렐루야!"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그 분은 살아계십니다. 저는 며칠 동안 배 멀미가 났었다우. 멀미가 날 때 오렌지가 먹고 싶어서 하나님께 구하고 있었지요. 아마도 기도하는 중에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깨어보니까 그 분은 한개도 아닌 두개나 되는 오렌지를 주셨지 뭡니까."

그 불신자는 자신과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응답의 도구로 쓰였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아무리 사소한 작은 부분일지라도...

관여하시고 돌보시고 함께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아무리 작은 기도에도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증거를 날마다 매 순간마다 체험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삶 속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베푸신 믿음의 증거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도한 믿음의 증거요, 믿음의 간증들이 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품은 모든 기도 속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 주시고 믿음의 증거를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한 우리의 간구가 믿음의 증거로 드러나기 원합니다. 항상 우리 옆에서 세심하신 눈길로 돌보시고 함께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손길을 체험하며 그 은혜에 감사드릴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2.20

본문: 히브리서 11:1-2절

 

제목: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믿음을 두 번째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이 보이지 않는 땅이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그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비전의 사람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믿음의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그것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실제로 떠났습니다.

자신이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는 말씀에서 증거는 '내적 확신'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1884년 한국에 온 최초의 선교사는 목사가 아니라 의사였습니다.

그는 정부의 도움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이 병원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병원을 주관하는 관리들의 부패가 심해져서 원성이 컸습니다.

결국 선교사들은 재산권과 운영권을 자신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오랜 협상 끝에 정부는 선교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병원 책임자는 캐나다인 에비슨 박사였습니다.

1893년 우리나라에 온 그는 병원 발전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는 병원의 수준을 높이려고 애썼습니다.

에비슨이 처음 도착했을 때 병원은 한국식 단층건물로 12.5평 크기였습니다.

그는 설계사에게 부탁하여 40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병원을 설계토록 했습니다. 비용은 1만달러 정도가 소용될 예정이었습니다.

1900년 봄 에비슨은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초교파 해외선교대회에 참석했고...

병원에 대해서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청중이 너무 많아서 겁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발코니 맨 뒤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저 사람이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스탠더드 석유회사의 지배인이던 세브란스였습니다.

연설이 끝나자 세브란스는 에비슨을 찾아와서 계획에 대해 자세히 물었습니다.

에비슨은 이미 설계도까지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세브란스는 다시 한 번 감명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세브란스는 1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선교부에서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병원을 짓는데 너무 큰 돈을 허비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작은 병원 여러 개를 짓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비슨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결국 선교부는 이 계획에 동의했습니다.

1902년 세브란스의 기부금과 기존 병원 판매 대금을 합쳐서 서울역 맞은편에 병원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904년 11월 세브란스병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선교의 역사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 최고의 병원 세브란스는 한 의료선교사의 비전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의 비전과 기도를 통해...

그 믿음을 통해 실제로 믿음의 증거가 열매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의 삶을 통해서...

어떤 믿음의 비전을 품고 계십니까?

여러분 각자에게 맡겨 주신 하나님의 달란트를 가지고...

여러분이 믿음으로 품고 있는 꿈과 비전이 있으십니까?

부디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시는 그 비전과 꿈을 이룰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믿음의 증거를 맺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꿈을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며 그 성취를 위해 더욱 부지런히 기도하며 그날을 준비하며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의 증거를 통해 분명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천국복음의 열매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오직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며 드러낼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천국 복음을 이 땅위에 증거하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순종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증거들을 실제로 드러낼 수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2.19

본문: 히브리서 11:1-2절

 

제목: 바라는 것들의 실상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답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에는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내 사라의 태가 죽은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고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능히 이루실 줄로 확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소망의 바탕이 됩니다.

살다보면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절망이 엄습할 때가 찾아옵니다.

현실은 절망적이고 포기하고 싶고 낙심이 되는 상황에 처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기다리라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런 때 많은 사람이 방황합니다.

현실을 따르자니 비참하고 말씀을 따르자니 비웃음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말씀을 붙들고 소망 중에 바라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풀 레스먼은 70년대 초반, 예수 혁명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1972년에 그는 달라스에서 엑스플로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때 모인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8만 5천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꺼번에 8만 5천 명이 집회를 하려다보니 달라스에 있는 모든 숙소를 동원해도 모자라 3만에서 3만 5천 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거리에서 자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달라스가 마침 신흥도시로 부상하면서 임대 아파트를 많이 지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아직 분양되지 않은 임대아파트가 5천 동이나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임대 아파트를 빌려서 숙소로 사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 고등학생이 열 명씩 들어와서 일주일 동안 생활한다는데 누가 선뜻 아파트를 빌려주겠습니까?

주택회사에서는 아파트를 빌려주지 않을 요량으로 믿을 만한 보험회사의 보증을 요구했습니다.

대회 기간 중에 아파트를 깨끗하게 쓰고 만약 하자가 발생하면 전부 수리하겠다는 내용으로 말입니다.

어느 보험회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을 어리석은 계약 내용이었습니다.

폴 레스먼은 마침내 미국에서 제일 큰 보험회사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찾아간 날 마침 그 보험회사 회장이 로비에 서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만날 약속이 있어서 잠깐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풀 레스먼은 회장에게 다가가서 자신을 소개하고 찾아온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듯이 그 회장은 보험 계약을 승낙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장의 막내딸이 예수를 믿고 그 엑스플로 대회에 참가하려 했는데,

그날 아침 화학실에서 실험을 하다가 황산이 눈에 튀는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딸이 실명을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공교롭게도 그 딸이 참가하려고 했던 엑스플로 대회 관계자가 찾아와 도움을 청하니 '아,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대회에서 2만 명의 결신자가 나왔고...

그 중에서 천 명의 헌신자들은 선교사, 목사가 되었습니다.

진정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재한 집회였습니다.

70년대 초반, 마약과 음란으로 죽어가던 히피문화의 젊은 세대에게 복음의 불을 지핀 그런 집회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은 믿음 가운데...

우리의 바라는 모든 것을 이미 아시고 그 믿음의 증거를 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도...

오직 믿음으로 여러분이 마음속에 바라는 하나님의 선한 일에 대하여 소망을 품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여러분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입술로 고백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몸과 삶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증거로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믿음으로 우리가 바라고 기도하는 모든 것들이 실재로 응답되는 귀한 은혜를 체험하기 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귀한 아침 시간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2.18

본문: 히브리서 10:36-39절

 

제목: 인내의 필요성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 있어서 인내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인내가 없으면 졸업이 안 됩니다.

믿음의 인내 없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도 맺을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눅 8:15에서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3:10에서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내 없이는 지킬 수도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눅 21:19에서는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인내란 원어로 "휘포모네" 라고 하는데...

즐거운 희망찬 인내, 지속, 견딤이라는 뜻입니다.

마지 못해서 억지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즐겁게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12:2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처럼...

인내란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다란 "휘포메노" 라고 하는데...

밑에 머무르다, 즉 남겨지다, 비유적으로 견디다, 즉 참다(시련을), 꿋꿋함을 지니다, 인내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꿋꿋이 참고 견디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내도 소망 가운데 기쁨을 가지고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게는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과 함께 크게는 천국과 상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단 마귀는 바로 우리의 인내를 시험한다는 사실입니다.

인내의 반대는 조급함입니다.

조급함은 마귀의 전용물입니다.

원수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급하고 서두르게 해서 실패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건축업자들이 부실공사를 해서 완공된 건물이 무너지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사울 왕의 첫 번째 실패의 원인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울이 왕이 된 후에 처음으로...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그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내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올 때까지 7일을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 7일을 기다리지 못해서 자손대대 물러 받을 왕권을 잃어버리고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이 다급한 나머지 번제를 드리고 나니까 사무엘 선지자가 도착했습니다.

삼상 13:8-14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왜 사울 왕이 사무엘 선지자가 기다리라고 했던 7일이 지났을 때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번제를 드리는 실수를 범했습니까?

사울 왕에게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내하는 믿음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사실 인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믿음이 없이는 인내가 불가능합니다.

인내가 없으니까 대신 조급함이 나타납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무엘이 일부러 7일이 지나고 나서 그 다음날 온 것 같습니다.

7일까지는 잘 기다렸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오지 않자 백성들이 흩어져 버렸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모여서 이스라엘을 침공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사울 왕은 오직 선지자만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자신이 드리고 말았습니다.

번제를 드리고 나자 곧 바로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하루를 더 참고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날짜로 보면 단 하루를 참지 못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영원히 누릴 왕권을 다윗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의 경주에서...

단 하루를 참지 못하고...

단 한 번을 참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면 이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하루 입니다.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일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 입니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그 내일을 맞이하는 오늘 하루 동안...

우리의 믿음을 인내로 지켜야 합니다.

히 4:5-7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 동안도 오직 믿음의 인내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여러분의 마음을 성령으로 다스려 완고하지 않도록 지킬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늘의 소망을 품고 오직 믿음으로 인내하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이 세상과 사단이 주는 모든 고난과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oly Life

25-2.17

본문: 히브리서 10:33-35절

 

제목: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 우리는 배교자가 받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체험했다고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조금만 우리가 방심하는 순간...

사단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유혹하고 시험으로 쓰러뜨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교만과 욕심과 세상에 대한 정욕을 꿈틀거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의 인내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을 인내하고 견디어서 결국은 승리해야 합니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의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에 있습니다.

이 땅의 것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이 땅의 것에 소망을 두면 안 됩니다.

이 땅의 것에 미련을 두면 안 됩니다.

이 땅의 것으로 만족과 기쁨을 누리려고 하면 안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성에 미련을 둔 롯의 아내처럼...

이 세상과 이 땅의 것에 미련을 두고 소망을 두면...

소금기둥이 되고 맙니다.

그야말로 아무소용 없는 먼지와 같이 이 세상 것은 모두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불신자들에게 비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단의 권세 아래에서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비웃음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어떤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이렇게 세상과 사단의 권세에 고난과 핍박을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며...

그들을 위해서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손해보고...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긴다 해도...

실망하거나 불평과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도 안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

34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왜 입니까?

말씀 그대로 입니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이 있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골 3:1-4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이 땅의 것은 모두 없어질 것이지만...

이 땅의 것은 이 세상의 생명이 끝나는 날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리지만...

위의 것...

하늘의 영원한 생명...

하늘의 영원한 상급과 축복은...

내가 영원히 나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진정한 나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의 담대함을 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35절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믿음의 담대함은...

진정한 믿음의 용기 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소망 입니다.

하늘의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입니다.

진정 하늘의 생명과 축복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진정한 하늘의 나의 상급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진정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천국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이 땅의 것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이 땅의 것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땅의 것에 미련을 두고 목숨을 걸고...

이 땅의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애통해 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지옥의 사망으로 걸어가는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고 나눌 수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진정한 보화가 무엇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에 살아가시면서 진정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 땅의 것입니까?

이 땅의 것을 누릴 수 있는 물질만을 위해서 살아가십니까?

부디 이 세상 모든 우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하늘의 소망을 품고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허락해 주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 뜻대로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믿음의 백성들이 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큰 상이 예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도 하늘의 큰 상을 위해...

믿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유혹과 환난과 핍박을 담대히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하늘의 큰 상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하늘의 상급과 하늘의 영생을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